삼국지 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현대에 좀 억울하게 비판 받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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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은 연의의 재미를 위해 정사에서 명장인 유비의 군사적 능력을 모조리 너프시켰다는 말이 많은데
연의와 정사를 같이 두고 복기해보면 저 비판은 나관중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하기 그지 없는 평가다.
오히려 나관중은 유비에게 승전을 붙여줬음 붙여줬지 깎아먹은게 아니란것
제갈량 등장후를 주로 비판점으로 삼지만 오히려 그 반동으로 전반부에 실역사와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이를 못믿겠다면 행보를 비교해보자
정사 유비- 황건란시절 공을 세워 현위승진,(영웅기 참조시)조조진영에 잠시있다 떠남,적도에게 격파되어 공손찬군 편입
조조의 서주침공무렵 조조에게 격파,서주장악후 원술에게 대패, 여포에게 2연패, 왕충잡았으나 조조깃발만 보고 도주
연의-황건란시절 원소조조손견동탁등 거물들과 엮이고 주준휘하에서 장보의 목을 취하는 기책으로 큰공을 세움
반동탁시기 여포 이기고 호뢰관돌파하는 선봉부대역할
조조의 서주침공시기 패배묘사 삭제
여포와의 일전에서도 잘못은 장비몫으로 넘김
실 역사서 원술의 최후때 맞붙지 못했던것과달리 원술군과 회전을 벌여 기령군을 격파하고 끝장낸걸로 묘사
조조가 직접왔을때도 전략짜고 나서서 싸웠지만 억까로 진걸로 각색
대충 이렇게 끊어만봐도 연의에서 유비 군사적능력을 최대한 띄워주려고 노력한 흔적이보인다
그리고 당대 유비의 군사능력의 평만봐도 생각만큼 와 명장!하는것과 거리가 있다 육손만해도 유비를 두고 패배가 더 많다고 디스한기록도 있고 아에 군에 무지하다고 깐 조비의 경우도있다
결정적으로 유비의 입촉시기 있었던 토론을 보면 나관중이 뛰어난 부하를 둔 모자라는 군주의 이미지를 만든게 아니란걸 알수있다
[부자]傅子 – 당초, 유비가 촉을 습격했을 때 승상연(丞相掾) 조전(趙戩)이 말했다,
“유비가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용병에 서툴러 싸울 때마다 패하여 도망 다니기 바쁘니 어찌 남을 도모하겠습니까? 촉이 비록 작은 지역이나, 험고(險固)하고 사방이 막혀 있어 홀로 지킬 수 있는 곳이라 끝내 아우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징사(徵士) [徵士; 조정에 초빙된 선비] 부간(傅幹)이 말했다,
“유비는 관인유도(寬仁有度-관대하고 어질면서도 법도가 있음)하며 사람을 얻는데 사력을 다합니다. 제갈량은 달치지변(達治知變-다스림에 통달하고 변화를 앎)하고 바르면서도 모략이 있으니 재상으로 삼을 만합니다. 장비, 관우는 용맹하면서도 의리가 있으니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만 명을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용맹한 장수)으로 장수로 삼을 만합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로, 유비의 지략에다 세 인걸이 그를 보좌하니 무엇을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나관중이 프레임씌인 유비를 만들기 천년전인 당대부터 이미 유비는 모자라지만 착하고 좋은 부하들을 둔 군주라는 이미지였던걸 알수있다.
물론 제갈량 합류이후에 제갈량이 다하는거같지만 이런 제갈량의 활약 대부분도 허구와 뻥카가 많다는걸 생각하면 딱히 유비가 활약을 뺏긴게 많지 않은것
유비의 교묘한 지능이 약화되긴했지만 대신 확고한 황숙+충신이미지를 받았으니 손해라고보기엔 애매하고
결론은 유비는 나관중이 무능해보이지 않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캐릭터란거다.
3줄요약
1.나관중이 유비의 군사능력을 너프시켰다는건 오바
2.오히려 공백기에 활약을 쑤셔넣어 승전을 늘림
3.'약한 유비와 유능한 부하들' 이미지는 의외로 당대부터 존재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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